
정제혁, 경향신문, 2008-2-13

한국정치에서 수많은 당이 명멸했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진보진영에서 창당을 시도한 역사를 살펴보자. 크게 분류해 보면, 3번의 시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1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1995년까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비롯된 견해의 차이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독자세력화를 주장하고 민중대통령 추진 세력은 88년 총선에서 한차례 더 경쟁을 했다. 민중의당,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여 총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비판적 지지를 주장한 재야를 대표단체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주축들이 결성한 평화민주연합(민평련)의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은 민주대연합노선을 표방하고 평화민주당에 합류하였다.
92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89. 1. 21)의 주요 간부들인 장기표, 이우재, 이재오가 시도한 민중당(90.11.10)은 1991년 1월 지방선거에서 42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1명이 당선되었고, 1992년 3월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51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평균 6.2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나 한명도 당선되지 못하여, 정당법에 의거 해산되었다. 반면에 이우정, 신계륜, 박우섭 등이 ‘신민련’을, 이부영, 유인태, 제정구 등은 ‘민연’을 결성하여 민주당에 합류하였다. 1995년에는 ‘통일시대 국민회의’(김근태 심재권 천정배) 등이 ‘새정치국민회의’로 들어갔다. 독자노선은 계속 실패했고, 재야의 지도급 인사들은 개별적으로 영입되는 방식으로 합류하였다.
제2기는 97년 대선에서 2000총선까지 시기다. 97년 대선에서 재야전선조직인 전국연합과 민주노총, 진보정치연합, 노동자정치연대라는 4개의 조직은 연합하여 권영길을 대통령후보로 대선에 참여한 ‘국민승리21’을 조직하였다. 그 후 2000년 1월 29일 민주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반면에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젊은 피’ 라 불리는 386, 김영춘, 송영길, 우상호, 임종석, 오영식 등을 수혈하였다. 재야조직은 조직적으로 독자정당을 창당했고, 민주당은 여전히 개별 영입을 했지만, 조직적 결합의 단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3기는 2002년 대선에서 2008년까지 총선까지다.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민주당과는 별도로 노무현 구하기가 진행되면서 ‘개혁당’이 창당되었다. 그 후 총선에서 민주당 개혁에 실패하고 분당을 선언한 ‘천신정’ 세력과 한나라당 탈당파(일명 독수리 5형제)와 개혁당, 그리고 자치운동과 시민운동세력이 합류하여 선거연합당인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다. 선거결과 민주세력이 최초로 원내과반수를 차지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민노당은 2004년, 드디어 10명의 국회의원을 탄생시켰다. 개혁당 창당은 개별적으로 거대정당에 영입되는 역사를 끝내고 조직적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독자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개혁당은 새로운 정당의 모델을 실험한 계기가 되었다.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44)
http://www.vop.co.kr/A00000264357.html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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