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제정회의 이후 시민권과 정치경쟁, 대중참여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일련의 지속적 변화
아메리카합중국의 건국이 준비되던 시기에 매디슨은 당파성이 문제라고는 봤지만 당파성을 없앨 수는 없다고 봤다. 그래서 당파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특정 당파가 전횡을 일삼을 수 있는 환경이 문제라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하여 특정 당파의 전횡을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당파의 수가 무수하게 늘어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그는 1780년대 후반 신문에 기고한 일련의 논설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예컨대 제10호)에 담아 표명했다. 상대세력의 당파성을 우려하면서 서로 공격하느라 세월을 보내는 사이에 당파정치가 도리어 강화되는 경향을 직시하고, 당파 자체보다는 전횡을 예방하는 쪽으로 발상을 바꾼 것이다.
물론 그가 생각한 패거리에는 정당의 형태를 갖춘 세력들만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라는 정부의 기능, 각 기능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서와 권한들, 각 주정부와 시정부 및 그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 정부 이외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언론기관이나 기업체, 온갖 종류의 단체와 조직들이 다 포함된다. 정부 부서끼리도 상호 견제를 할 수 있어야 전횡이 방지되고, 나아가 시민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상 온전히 미국 헌법에 반영되었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의회주권, 즉 대의정치의 이념을 부인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의회주권주의를 시행하되 자기네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서 발생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의 산물로 탄생했다. 미국은 독립전쟁에서 일단 승리한 후 1780년대를 느슨한 연방제, 즉 상설기관으로 중앙정부는 없이 13개 주가 각각 독립해서 지내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대륙의회를 소집해서 논의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이 때문에 연방정부를 만들자는 여론이 일어서 1787년에 제헌회의가 열렸는데, 당연히 연방정부를 구상할 때 첫 번째로 고려된 모델은 의회가 주권을 가지므로 곧 의회 다수당이 행정권을 차지하는 영국식 의회제 정부였다.
그런데 당시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뉴욕, 매사추세츠 등 큰 주들은 이의가 없었지만, 로드 아일랜드, 코네티컷, 매릴랜드, 델라웨어 등 작은 주들에게는 다수가 결정한다는 것은 곧 자기들의 목소리는 무시된다는 뜻과 같았다. 이처럼 13개 주 가운데 작은 주들은 처음부터 연방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영국의 대의정부를 모델로 삼되, 작은 주들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 한, 영국식으로 의회 다수당에게 권력이 통합되는 체제는 진지한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맥락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행정부 수반을 의회에서 독립시켜서 별도의 선거인단이 선출하도록 한 데에는 의회를 무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의회 다수파의 전횡 가능성에 대비한 견제장치를 확대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물론 의회에서 독립된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존재만으로 작은 주들이 연방헌법을 승인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다. 큰 주 대 작은 주라는 도식에서 바라보는 한, 여전히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큰 주 쪽에서 나올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미국 초기에는 초대 워싱턴, 3대 제퍼슨, 4대 매디슨, 5대 먼로, 9대 해리슨, 10대 타일러, 12대 테일러 등 버지니아주 출신 대통령이 줄을 이었고, 나머지도 매사추세츠, 노스 캐롤라이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뉴욕 등 큰 주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연방을 결성해서 자칫 영구적 소수파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던 사람들이 이 제도를 수긍하기에는 조지 워싱턴이라고 하는 정치적으로 거의 바보에 가까울 만큼 지위를 탐하지 않고 소극적이었던 인물이 그 자리를 맡게 되리라는 예상에서 오는 안도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프레지던트라는 명칭은 식민지 시대부터 각종 행정관의 우두머리나 의원회의 의장에게 붙이던 직함으로, 제헌회의 의장도 프레지던트라 불렸는데, 바로 그 직책 또한 워싱턴은 마지못해서 맡아 별로 발언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무색무취 무욕무력의 대명사 조지 워싱턴이 초대 프레지던트로 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제와 상하 양원제로 이뤄진 헌법이 각 주의 비준을 받았던 것이다.
현대의 미국 대통령은 물론 워싱턴과는 달리 훨씬 강력한 권한들을 행사한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강력해진 대통령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의미에서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은 지금까지 아무리 "제왕적"이라고 비판을 받아도 박정희나 전두환에 가까운 독재는 하지 못했다. 의회 다수가 설사 자기 당 대통령에 대해서라도 상식과 헌법에 따라 일정한 견제 역할을 의무로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20세기에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확대된 것은 19세기말부터 일어난 진보주의 운동의 여파라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권력분립과 상호견제를 중시했던 것이 농경사회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산업혁명 후 확대된 경제에서는 기득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그처럼 불평등한 상황은 주로 의회가 기득권을 대변하기 때문이므로, 대통령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했다는 해석이다. .
미국 대통령제를 말하면서 조지 워싱턴의 선례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다. 그러나 미국이 건국초기에 이미 시민혁명을 거친 나라, 다시 말해 대의정치의 원리에 관해 사회적 합의가 탄탄하게 깔려 있어서 권력자의 전횡을 인민이 마냥 참고 넘어갈 수는 없는 나라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적인 시각에서는 의회라는 것이 시간만 보내고 시끄럽기만 한 곳으로 보이기가 십상이라서, 강력한 의회의 존재라는 맥락 안에서 그런 의회의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로서 미국의 대통령제가 탄생해서 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한미 FTA를 한국에서 찬성하는 편이나 반대하는 편이나 미국 행정부의 의견을 곧 미국 의회의 의견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정확히 똑같이 의회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프레임의 소산이다.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외교문서를 미국의회라고 해서 거부한다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막상 이 의제가 미국 의회에 상정된 후 거기서 벌어질 논의는 그 꼼꼼함이라는 것이 한국의 국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이리라 점만은 장담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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