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이 항목의 스프링노트 원문주소

 

 

사건개요

 

 

당시 성명서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해방후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경제수탈을 위한 것으로 일관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우방이라는 명목하에 국내 독점자본과 결탁하여 매판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그들의 지배논리에 순응하도록 강요해왔다. 우리 민중의 염원인 민주화, 사회개혁, 통일을 실질적으로 거부하는 파쇼 군부정권을 지원하여 민족분단을 고정화시켰다. 이제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땅에 판치는 미국세력의 완전한 배제를 위한 반미투쟁을 끊임없이 전개하자. 먼저 미국문화의 상징인 부산 미국문화원을 불태움으로써 반미투쟁의 횃불을 들어, 부산시민에게 민족적 자각을 호소한다.
 
  '살인마 전두환 북침준비 완료'
  1. 민주주의를 원하는 광주시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
  2. 최후발악으로 전두환 군부정권은 무기를 사들여 북침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다시 동족상잔을 꿈꾸고 있다.
  3. 진정한 통일을 원하는 민주시민들을 탄압 구속한 채, 허울 좋은 통일정책으로 더 이상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
  4. 한일경제협력 등 한국경제를 일본에 예속시키는 일체의 경제협상을 즉각 중단하라.
  5. 88올림픽은 한국경제를 완전히 파탄 나게 할 것이므로 그 준비를 즉각 중단하라.
  6. 노동자, 농민, 시민들은 더 이상 비참한 가난 속에서 시달릴 수 없다.
  7. 미국과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나라.
  8. 전두환 파쇼정권에 아부하는 관제언론 어용지식인들은 자폭하라.
  9. 졸업정원제, 교수추천제 등으로 학원을 통제하고 있는 5·30교육정책을 즉각 철폐하라.

 

사건참여자 및 구속자

 

 

재판의 진행
반민주적 반민족적 현군부파쇼정권을 지탱시켜 주는 가장 큰 힘은, 정치적 기반도 경제력도, 경찰력도, 군사력도 아니며, 바로 비정상적이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과연 미국이 이땅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묻고 싶습니다. ……유신정권 20년 간 미국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군부정권을 지원해오지 않았습니까? ……주한미군의 허락 없이는 대규모의 병력이동이 불가능하다면, 광주사태시 수많은 공수부대요원을 광주에 투입시켜 전두환 군부가 단독적으로 시민들을 학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찌 우방으로 자처해온 미국이 그토록 잔인한 광주시민학살을 지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광주시민을 죽인 무기는 바로 소위 '한미군사협정'하에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사들였던 미국산 무기가 아니었겠습니다. (대구고법에 문부식이 낸 탄원서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 외, 『한미관계의 재조명』, 1986. 8,, 111∼112쪽 수록)

 

 

부산미문화원건물

 

 

이후의 반미운동

 

 

자유롭게 메모적는 곳

 고맙습니다. 수학도님이 여기에 공간을 만들어 주신 것이겠지요. 진작 이렇게 작업 했어야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공간 만큼은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저두 고맙습니다. 꾸벅~! 군졸이군졸이 따라가겠습니다.. (아직 스프링노트가 어색한 1人.. Tree백)

 

에 정황이 좀 자세하게 적혀 있네요.

노무현 변호사는 허진수와 김화석을 변호한 것으로 나오네요.

 

“허진수 김화석을 변호하고 나선 노무현 변호사는 35세의 나이에 기라성 같은 선배 변호인들 속에 끼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변호인들의 반론에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찡그리고 있는 판사를 향해 따끔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저의 조상 중에 벼슬길에 올랐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할아버님들보다는 옳은 말을 하시다가 귀양살이로 일생을 보낸 할아버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존경심으로 흠모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의 성격상 심리하기에 벅차실 줄 믿습니다만, 후손들 손가락질보다는 칭송과 존경으로 우러러볼 수 있는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이때 부장판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노무현 변호사는 최병국 검사와도 법정에서 여러 차례 충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고성과 험한 말이 오가는 등 충돌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사형을 받았던 두 명의 에세이가 출판되어 있으니, 참고자료로 쓰시면 좋을듯하네요.

 

허진수

거제 출신으로 70년대 중반부터 부산에서 사회운동을 하다 84년 마산·창원에 온 허진수씨 역시 '한국기독교장로회 전국청년회' 출신이다. 74·75년 거제에서부터 청년회 활동을 하던 그는 76년 대한조선공사(현 대우조선해양)가 거제 옥포에 들어오면서 강제이주를 당해 부산으로 옮겼다.
그후 부산지역 재야운동의 아버지격인 고 최성묵 목사가 있던 보수동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청년운동을 하던 중 79년 부마항쟁에 연루돼 쫓기는 신세가 됐고, 80년 7월 전두환 신군부정권에 연행돼 합동수사본부에서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 후 허씨는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획을 긋는 중대한 전기가 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에 연루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 우방으로만 여겼던 미국의 존재가 완전히 새롭게 규정된다.
부미방 사건은 광주항쟁으로 도피생활을 하고 있던 김현장을 통해 '5·18 광주'의 진상을 알게 된 고신대 학생 문부식·김은숙 등이 미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유인물을 뿌리고 도망간 사건이다. 허진수씨는 이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된 김현장과 주범인 문부식·김은숙을 소개해주고, 그들이 사전 합숙교육을 하고 이후 도피처로 활용했던 가톨릭 원주교육원(원장 최기식)을 연결시켜줬다는 이유로 공범이 됐다. 재판에서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83년 성탄절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석방 후 기독교청년운동 시절 알게 됐던 마산 한교회 신석규 장로의 권유로 창원에 오게 됐는데, 여기서 한교회를 거점으로 한 마산의 운동세력들과 교우를 트게 된다.

 

 

 

관련된 항목들

 

 

참고할만한 자료
블로그

 

관련도서 및 논문

20년 전 재판정에서 한 검사는 내게 “피고의 생각이 옳다고 하자. 그렇지만 피고의 형제나 친척이 그 곳에 있었더라도 불을 지를 수 있었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말 감옥에서 나왔을 때 나는 일종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적당히 그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해 갔다.
돌아 보면 우리들 중에 인간에 대한 폭력을 공공연히 주장하거나 지지한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들의 행동이 폭력을 수반하거나 폭력을 유발하는것이었을 때 그것을 비판하거나 지적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적었다.
자기 정당성이 어느 집단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는 집단 속에서 폭력은 옹호되거나 합리화 되기 쉽다. 자신들은 오류가 없다고 믿고 싶은 욕구가강할 때 폭력은 성찰될 기회를 잃는다. (“동의대사건 민주화운동 신청은 잘못”…문부식씨 주장, 동아일보, 2002-7-11)

 

 

관련기사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19/19820319DAM1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0/19820320DAM0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2/19820322DAM1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3/19820323DAM0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4/19820324DAM1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7/19820327DAM1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29/19820329DAM11.pdf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0/19820330DAM01.pdf : 문부식등 피의자 검거 기사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0/19820330DAM10.pdf : 방화사건 일지등의 기사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0/19820330DAM11.pdf : 시민 반응 등과 이호철 검거 소식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1/19820331DAM01.pdf : 방화사건 반미 아닌 탈선 홀드리지 차관보 의회 증언 외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1/19820331DAM10.pdf : 부미방 계기로 본 지하 이념 서클 (상)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3/31/19820331DAM11.pdf : 기사명(문부식 교묘한 점조직 범행)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1/19820401DAM11.pdf : 불지른 여대생 추가 구속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1/19820401DAM14.pdf : 미국을 보는 눈,한국을 보는 눈 (박권상 전 동아 기자 투고)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2/19820402DAM01.pdf : 원주서 신부 설득으로 자수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2/19820402DAM03.pdf : 빗나간 이념의 극한 탈선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2/19820402DAM10.pdf : 자수 뒷 얘기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2/19820402DAM11.pdf : 원주교구청 번민의 3박 4일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3/19820403DAM01.pdf : 김현장 검거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3/19820403DAM11.pdf : 원주 교육원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5/19820405DAM01.pdf : 최기식 신부 소환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5/19820405DAM03.pdf : 성당과 고해는 성역인가?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5/19820405DAM10.pdf : 부산 미문화원 방화와 대학 이념서클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5/19820405DAM11.pdf : 카톨릭 고뇌의 미사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6/19820406DAM03.pdf : 부미방 충격의 3각 파문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8/19820408DAM01.pdf : 최기식 신부등 3명 구속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8/19820408DAM03.pdf : 고민 끝에 내린 법의 집행, 지학순 주교 회견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8/19820408DAM10.pdf : 부미방 수사 상황 경찰 발표 전문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8/19820408DAM11.pdf : 수사기관도 교계도 진통

          o http://gonews.kinds.or.kr/BEFORE_90_IMG/1982/04/09/19820409DAM01.pdf : 김현장 관련자 21명

 

 

 

 

 

 

관련통계

 

관련법률

 

관련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