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기독교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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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과 NCCK

 

 

근대화와 기독교

기독교의 계몽 운동 228p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가 전개한 국민 계몽 운동 가운데 가장 큰 공헌은 교육 사업이었다. 1910년 8월 13일자 관보 제 4556호에 나타난 전국 각급 학교의 숫자를 보더라도 관공립학교 80개 교인 데 비해 기독교단체들이 세운 사립학교 755개 교에 달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가리켜 박종홍은 '한일합방 전후만 하더라도 교육 사업은 초등에서 전문에 이르기까지 개신교가 도맡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899년 4월 12일자 '대한 그리스도인 회보'도 '나라의 개명함은 인재를 교육하는 데 있은 즉, 어느 나라든지 만약 개명 진보하려면 각 학문으로 인민을 널리 가르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이 사회의 개명과 진보에 필수 조건임을 명시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조선의 개신교 233p

조선에 뿌리내린 개신교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이었다. 더구나 190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보호조약 이후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열강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개명해야 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07년 5월 도산 안창호가 미국에서 귀국하여 양기탁, 윤치호, 이승훈 등 기독교 신자를 중심으로 비밀 정치단체인 신민회를 결성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고, 일제가 한일합방과 더불어 기독교 탄압의 일환으로써 신민회를 해산시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당시의 개신교가 계몽하고 지향하려는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기독교의 신앙을 통한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과 자아의 발견이었다. 유교 윤리의 차별적 가치가 지배하는 일종의 닫힌 사회인 조선 사회에서 기독교가 내세우는 새로운 가치관이란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민평등의 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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