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도시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본
2009년 9월 27일 독일 총선
통일이후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 경제 불균형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을 계기로 그를 지지한 북부 독일지역과 카톨릭을 사수하는 남부독일로 양분된 독일의 분열은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의 갈등을 촉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독일 30년전쟁 종식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
나폴레옹의 지배 기간 동안 민족주의가 발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와 독일의 여러 주에서 도입한 합리적 개혁으로 인해 봉건적 예외주의가 타파되었고 국가의 제도들이 뿌리를 내릴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욕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개혁을 이끌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인들에게 국가 제도를 재정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 같은 도움이 힘입어 훗날 이탈리아와 독일은 각각 자신의 국민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된다. [미셸린05] 209p
1814년 나폴레옹 패배
1815년 빈회의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한 회의
빈의정서 성립 후에 역내에서 공간적 지배권을 행사하던 39개 주권적 제후국들로 구성된 매우 느슨한 '독일연합'이 성립
1820년대 독일 산업화 시작
1834년 '관세동맹' 성립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주도
독일 연방 내 대내관세를 철폐하여 경제적 통일
프로이센의 결정적 역할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독일에서 3월 혁명(부르주아 혁명)이 발생
독일의 민주적 평화 통일이 실패
독재체제가 남겨짐
1862년 9월 비스마르크 프로이센의 수상으로 임명됨
1871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에서 프로이센이 승리, 1월 비스마르크에 의해 최초의 연방국가 형태로 독일제국이 탄생
알자스로렌 지방이 독일로 넘어감
1883년 노동자의 의무적인 질병보험, 산업재해보험, 노령자와 장애인의 포괄적 연금을 포함한 사회입법 통과
1888년 빌헬름2세 비스마르크 퇴진시킴, 제국주의 정책 고수
군국주의가 표면화
1913년 세계2위경제규모
1914년 1차대전 발발
1918년 1차 세계대전 패배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랑스로 넘어감
1918년 11월 9일, 빌헬름 2세 퇴위
1919년 바이마르공화국 출범
1933년까지 극심한 정치적 혼란
통일이후 독일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던 분리주의 경향에 대하여 중앙집권적 국가 요소 강화 시도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
독일에 대한 철저한 군비통제
전쟁 책임 배상 문제가 조약 제231조에 기술
1929년 10월 세계 대공황
1933년 나치집권
나치정권(1933~45)은 철저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수립
1936년 베를린 올림픽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다시금 연방제 국가로 부활
1949년 독일 기본법 제정
1969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 집권 '동방 정책' 실행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
독일의 정당체제와 의회 참조
봉건 국가 독일이 근대 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민 계급이 담당했던 역할은 매우 두드러진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에게서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시민이 보여준 정치적 색깔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독일에서는 혁명다운 혁명이 단 한 번도 없었겠는가? 귀족이나 왕족과는 달리 정치적 사회적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들은 지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래서 독일의 시민 계급은 '교육받은' 시민 계급으로서, 일명 '교양 시민 Bildungsbürger'으로 불린다. 아주 독일적인 이름이다.
독일에서 찬란하게 꽃핀 문학과 예술, 철학은 바로 이 계몽된 시민 계층이 없었다면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18세기 중후반기를 거치면서 독일은 이들 '교양 시민'에 힘입어 빠르게 유럽의 예술계와 지식 기반을 선도하기 시작한다. 독일의 대학생들은 신분이나 경제적 여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능력에 의해서만 구분되었다. 전통적으로 귀족을 위한 특수 학교의 의미를 가졌던 영국의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과는 아주 대조적인 '민주적' 전통이었다. 어느 정도 자유스러웠던 이런 분위기가 시민 게급에게 지적인 동기를 유발시키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독일식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보편적 지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하나가 아닌 두 개 이상의 전공을 장려하는 것이 당연지사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독일 특유의 전통적 제도를 고수하는 대학에서는 석박사 과정에서 주전공 외에도 두 개의 부전공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라틴어나 희랍어 등 고전어 능력 시험의 의무도 부과한다. 1960년대 이후에 세워진 빌레펠트나 베를린 자유 대학, 보쿰 대학, 콘스탄츠 대학 등 신설 대학은 학문의 보편성보다는 능률성을 중시하면서 이런 의무 조항들을 많이 완화시켰다. [장미영06] 39p
독일의 시민교육에 대해서는 각국의 시민교육 항목을 참조
영국이나 프랑스나 법치의 근저에는 자연법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17세기 영국의 탁월한 법률가 에드워드 코크가 주장한 자연법적 지배원리는 영국 헌법의 기본원칙이 되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토대가 된 계몽주의의 법률적 면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자연법적 대혁명의 평등사상이다. 근대국가의 골격은 바로 대혁명 3대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인 것이다.
그런데 서유럽의 후진지역이던 독일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하지 못한 채 휩쓸려 근대시민사회로 변모했다. 18세기 말 칸트가 '이성법'을 주장했지만, 어디까지나 이성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추상적 이론전개에 불과했다. 입헌주의적으로 발전한 독일의 법치주의는 실질적인 면과 형식적인 면의 양면성을 가졌다. 법률은 어차피 형식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면 실효가 떨어지는 것이므로 독일법은 이론적으로 탁월한 면이 있었다. 처벌 위주의 형식적 법치주의는 나치통치를 가능케 했을 법도 하다. 나치의 고통을 겪은 독일은 전후 기본법(헌법)에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실질적 법치의 이념을 담았다. '법 집행이 곧 정의실현'이라는 실질적 면은 자연법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안영환090306]
1883년 비스마르크가 노동자의 의무적인 질병보험, 산업재해보험, 노령 장애 연금제도 등을 포함하는 사회입법 제정
서독은 이미 1950년대에 노동력 부족으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터키 등의 '손님 노동자(Gast Arbeiter)'를 불러들여야 할 정도로 경제가 급성장했고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1960-1970년대엔 한국에서도 간호사와 광산근로자들이 대거 독일로 왔다.
동독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형편이 가장 나은 편에 속했지만 서독에 비하면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독인 약 300만 명이 서독으로 탈출하자 동독 공산정권은 1961년 베를린 장벽을 설치했다.[김경석090520]
독일의 통일 항목에서 다룸
일제 식민지 시기 독일관념론의 수입 [이광래03] 225p, 326p
50년대말부터 70년대까지 파독광부와 간호사
임금을 담보로 한 독일 차관설은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
터키 이민자
독일의 연방총리는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하원이 선출
선거과정에서 각 당 총리 후보가 이미 결정
총선 결과를 통해 사실상 결정
대통령의 총리 후보 지명권은 사실상 요식행위
연정 협상이 마무리되면 의회는 선거 후 1개월 내에 회의를 소집, 토론 없이 찬반투표를 실시하며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총리를 선출 [김경석090928] 참고
독일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항목을 참조
정치자금과 관련해서는 외국의 정치자금관계제도 항목을 참조
독일의 정당체제와 의회 항목에서 자세히 다룸
관련된 것으로 독일 총선 항목 참고
독일의 외국인노동자정책은 독일정부와 송출국정부 사이의 노동자고용에 관한 협약들에 의해 시작
유럽국가로는 1950년대 이탈리아, 1960년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독일정부와 노동자송출에 관한 협약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일본이 1956년에 일본광부의 독일고용에 관한 협약을 독일정부와 체결
1960 년대 한인광부와 간호사의 독일고용을 위한 정부간협정이 체결되어 한인노동자의 독일 이주가 본격화
( Booth, Heather. 1992. The Migration Process in Britain and West Germany. 1992: 110)
터키 이민자
1961년 10월 30일 경제발전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위해 터키 노동자를 들여오기로 결정하고 터키 정부와 노동자 이주를 위한 협정을 체결
독일은 전체 이민자 730만명 중 무슬림인 터키인이 187만명 [윤진051108]
이민정책 항목을 참조
KOTRA(GlobalWindow)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10/09/13/201009130500021/201009130500021_1.html
[김경석090928]독일 총리 어떻게 선출하나
[정치개혁 강좌]<10> 한국 정치가 독일 정치시스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선학태, 프레시안, 2009-9-11
[김민전090609]해외사례와 학계의 대안
김민전, 한국일보, 2009-6-9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1>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⑦
강철구, 프레시안, 2009-06-09
[해양문화학자 주강현의 바다도시와 해양문명 이야기] <21> 함부르크와 뤼벡
[김경석090520]독일건국 60주년..폐허에서 이룬 기적
김경석, 연합뉴스, 2009-05-20
신뢰가 바탕이 된 독일의 대학수능시험(Allgemeine Hochschulreife/Abitur)
민형석, 세계일보, 2009-03-18
[안영환090306]법치주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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