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 역사기행 2006년 11월 19일 방송
데지마는 1636년 나가사키에 만들어진 인공섬
네덜란드 상인들이 머물렀음
1543년 규슈 남쪽 다네가시마에 도착했던 포르투갈 상인들
이 때 일본에 조총이 전래되었는데, 영주는 8억원을 주고 조총을 구입함
오다 노부가나의 전쟁,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모두 조총이 활용됨.
카스텔라는 포르투갈인들의 빵을 흉내낸 나가사키 사람들의 발명품
1680년대 조선통신사 일행이 카스텔라를 처음으로 맛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1570년 나가사키를 포르투갈에 전면개방
봉건제를 유지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여겨진 기독교는 막고, 교역은 계속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함.
기독교탄압정책을 펴기 시작함.
1636년 나가사키에 데지마를 건조하고 포르투갈인들을 그곳에서만 머물수 있게 함.
1년후 기독교인이 주축이 됨 시마바라의 난으로 포르투갈 인들은 추방됨.
네덜란드는 반란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주고 환심을 사게 됨
그 이후, 데지마에 네덜란드인들이 머무르게 됨.
1859년까지 쇄국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인들에게 데지마를 통해 일본과 독점무역을 할 수 있었음.
데지마로 들어온 서양문물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됨.
포도주, 배드민턴 같은 것들이 보금됨.
일본이 근대로 가는 날개 역할을 하게 됨.
1823년 네덜란드 상관의 주치의로 파견된 시볼트가 일본의 의학에 혁신을 가져옴.
시볼트에게는 데지마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용되었고, 일본인들에게 의학을 가르칠 수 있었음.
나가사키의 나루타기 학원에서 일본의 근대의학이 싹트게 됨.
에도 막부는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들을 1년에 한번씩 불러들임.
그들이 교역선에 가져와 막부에 보고하는 풍설서가 막부로 하여금 국제정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줌.
해체신서의 발간과 일본의 서양학문의 번역 작업 본격 시작.
메이지 정부는 난학을 통해 모든 정보를 얻게 됨.
메이지정부의 비전을 세운 사카모토 료마 나가사키에 머무르며 공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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