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의료보험법 제정은 정당성을 결여한 5.16세력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강제적용 조항이 제외되어 시범사업으로 한정되었는데, 사업장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사문화되었다. 1963년이 의료보험의 형식적 원년이라면, 실질적인 원년은 1977년이다. 1977년 500인 이상의 사업장은 강제적용 대상이었고3) 지역주민은 임의적용 대상으로 남았다.
신현확과 남덕우의 의료보험 강제적용 논쟁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41882&sc=naver&kind=menu_code&keys=4
1976년 중반.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장방안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고개를 저으며 ‘사회보장망국론’을 개진했다. 경제팀장인 부총리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의료보험 불가(不可)를 설파한 것.
당시 대부분의 경제관료들은 남부총리처럼 박 대통령의 의료보장 지시에 대해 극력 반대했다. 경제성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 재정에 부담을 주고, 근로자들의 근로의욕도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은 경제관료들의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의료정책을 총괄하는 신현확 보사부장관을 불러 “어떤 일이 있어도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호제도를 시행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다. 마침내 보사부에서 국내 최초로 의료보험(현재의 건강보험)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강제 의료보험 실시부터 정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합주의 방식을 택했고, 1979년까지 의료보험조합의 수는 무려 603개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은 각각 독립된 금고를 가지고 독자적인 재정과 행정체계를 운영하며 자율적인 법인체들로서 조합적립금 등 그들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자율적인 독립채산제의 단체들로 변모하고 있었다(박병현, 2007: 411). 조합주의 방식에 근거한 시행은 초기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그 후 80년대 들어 부실한 조합 운영4), 소규모 조합의 재정 불안 등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조합의 대형화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통폐합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서 의료보험의 통합화가 논의되기 시작하면서 조합주의자와 통합주의자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1차 논쟁은 1980년에서 1983년 초까지를 말하고, 2차 논쟁은 1986년부터 1989년 초까지의 논의를 말한다. 1차 논쟁시기에 보사부는 1980년 10월 의료보험 통합을 의료보험 개혁의 목표로 잠정 결정하고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부의 과다한 재정 지출, 그리고 기업과 근로자 부담의 증가를 이유로 결국 전두환 대통령이 의료보험 통합 유보지시를 내리면서 1차 논쟁은 막을 내린다. 이러한 통합주의자들의 실패는 권위주의 정치 자체가 공식 라인에서 벗어나는 의견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정책 의제를 추구할만한 효과적인 옹호연합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개혁의 실패는 옹호연합의 제도적 취약성(institutional weakness)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1988년 농어촌 지역의보가 실시되면서 보험료 부담이 이슈화되면서 의보통합 논쟁이 다시 촉발되었다.5) 통합론자들은 통합을 통해서 농어민의 부험료 부담을 줄이고 의료보험의 형평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의 달라진 특징은 노동운동의 활성화와 농민들의 움직임이었다. 특히 농민들의 의료보험운동은 지배세력의 의도를 변화시킬 만큼 강력하였다(박병현, 2007: 413). 농민들은 1988년 10월에 진보적 단체들과 연대하여 ‘국민의료보험법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료보험 통합을 주장 하는 농민들의 주장에 대해 야당도 동조하고 나섰으나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조합주의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갈등 속에 1989년 3월 의보통합을 골자로 하는 ‘국민의료보험법’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어 통합화가 되지 못했다.6) 이 시기의 특징은 학계의 참여가 현격히 증대되었다는 것과 조합주의 진영의 주장이 1차 논의 때에 비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선회한 점이다. 조합주의 진영은 기존 의료보험 체제 수호의 차원을 넘어 조합주의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였다(박병현, 2007: 414).
1979년 1월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에 대한 의료보험이 전면 실시
1981년 의료보험법이 개정
1983년 의료보험 통합문제를 둘러싼 `보사부 파동'
1998년 12월 국민건강보험법안 제정
2000년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설립, 지역과 직장 의료 보험이 완전 통합
2001년 국민건강보험 재정 문제
이러한 의료보험의 통합의 의미에 대하여 대통령선거(1997년)나 국회의원총선(2000년)을 겨냥한 정치권력이나 정치인들이 선거구 지역주민들의 의료보험관련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그들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최성두, 2000: 378),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연대의 원리가 더 강하게 관찰되었고 또 의료비용 부담의 형평성과 분배정의를 가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보험료 수준이나 급여범위를 공공기관인 단일보험자가 통일된 기준으로 직접 관리하게 됨으로써 의료공급자의 관리나 급여범위의 설정에 있어서 과거보다 국가의 개입의 정도가 더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되어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동법은 강제가입이 아닌 임의가입형태로서 사회보험제도로서는 제도적으로 불안전한 면이 있어 그 대상자가 많지는 않았다. 보다 완비된 사회보험제도로서의 의료보험 체계를 갖추기 위하여 1976년 동 법을 개정하여 500인 이상 사업장근로자를 대상으로 강제적인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어 1977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한편,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에 대한 의료보험제도는 별도의 법 체계를 갖추어 1977년에 공무원및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법이 제정되어 1979년 1월부터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에 대한 의료보험이 전면 실시되었다. 1981년에는 의료보험법이 개정되어 농어촌지역 및 도시지역의 주민에 대한 의료보험의 실시시기를 대통령령이 정하도록 하여 1988년 1월과 1989년 7월에 각각 농어촌지역과 도시지역에 의료보험이 전면 실시되었다. 위와 같이 이원화된 의료보험체계는 의료보험이 확대 적용될 때마다 수십 개의 조합방식을 유지할 것이냐 단일화된 통합방식을 택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거듭되다가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및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을 통합한 국민의료보험법이 1997. 12. 31. 제정되어 1998년 10월부터 시행되었다. 이는 종전의 의료보험제도가 직장의료보험, 지역의료보험, 공무원및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각 조합별로 독립채산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인 차이로 인하여 각 보험별로 재정의 형편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직장의료보험조합은 커다란 폭의 흑자(1996년말 현재 약 3조 원 정도의 누적적립금을 보유함)를 보고 있는데 반하여 지역의료보험조합은 만성적인 적자상태로 인하여 그동안 매년 정부에서 막대한 액수의 국고보조를 하고 있는 형편이어서 사회보험의 중요 기능인 위험분산과 소득재분배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재정의 불균형과 이로 인하여 사회보험기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의료보험과 공무원및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을 통합하게 되었다. 이후 1998년에는 지역·직장과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의 의료보험체계를 통합한 국민건강보험법안이 마련되어 1999. 2. 8. 공포되고, 2000. 1. 1.을 그 시행일로 정하였다.
PDF 파일 검색
대한민국 정부
연대기
네이버 뉴스 검색 (키워드 수정)
도서내검색
도서검색